보도자료] 뉴스AS 가사노동자가 65년을 ‘외계인’처럼 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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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 가사노동자가 65년을 ‘외계인’처럼 사는 이유
등록 :2018-11-19 15:57 수정 :2018-11-19 16:11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때 ‘가사 사용인’ 적용 제외
18대 국회부터 발의 된 ‘가사노동자법’ 번번이 좌절
“가사노동 재평가는 성평등 노동과 직결되는 문제”
국회 환노위 의원 16명 가운데 9명 찬성 의견 밝혀
전국가정관리사협회와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들이 13일 오전 국회 앞에서 `노동자성 인정하는 가사노동자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가사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제11조 1항 `가사사용인 적용제외' 조항 때문에 지난 60여년간 법적 보호에서 배제되어 왔다”며 “가사노동자에게는 노동자라면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도 없다”고 밝혔다. 국회에는 가사노동자 권리보호를 위해 가사근로자법이 1년이 넘게 계류돼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손 마디마디 관절이 비틀어지도록 일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음지에서 이 때까지 기다려 왔습니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든다고 외치는데 우리는 몸이 망가지게 일하는데도 노동자가 아닙니다. (중략) 대한민국에서 가정관리사는 저 먼 우주의 외계인입니까?”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종이 한 장에 소외된 노동자로서 살아온 날들의 한스러움이, 더는 미룰 수 없단 절박함이 비쳤습니다. 지난 13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 제정안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국회 앞에 선 가사노동자(가정관리사) 손영희씨의 글입니다.
가사노동자들이 국회 앞에 선 건 처음이 아닙니다. 가사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법은 18대 국회부터 계속 발의됐지만 번번이 고꾸라져 ‘임기만료 폐기’란 꼬리표를 달아야 했습니다. 20대 국회에도 3건의 법안이 발의돼있습니다. 전과 같은 꼬리표를 달게되지 않을까. 가사노동자들이 다시 모인 이유입니다.
가정관리사 손영희씨가 직접 적은 ‘가사노동자법’ 제정안 촉구 발언문. 사진제공 한국여성노동자회·전국가정관리사협회
■ “노동자 아니다” 65년 전 법조항 그대로
근로기준법 11조 (적용범위) ①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 사용인에 대하여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1953년에 만들어진 근로기준법 11조 1항은 가사노동자를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적용에서도 모두 제외됩니다. 일을 하다 다쳐도 자비를 들여 치료할 수밖에 없습니다. 휴게시간이나 인격적인 대우를 보장받지 못해도 ‘견디는 것’이 최선입니다. 하루 아침에 잘려도 실업급여나 퇴직금은 나오지 않거든요. 임금이 밀려도 고용노동부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노동자와는 달리 민사소송을 거쳐야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보니 공식 통계도 없습니다. 현재 가사노동자 수는 30만명, 최대 50만명으로 추산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은 노동자의 건강도 개인의 문제로 돌립니다. 고용노동부가 의뢰해 한국노동연구원이 조사한 ‘가사서비스 공식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2015년)를 보면 염좌, 골절, 화상 등 가사노동 관련 주요 7개 안전사고 가운데 1개 이상 경험자는 전체 응답자의 76.1%입니다. 하지만 의료비용의 90% 이상은 노동자 본인이 부담했다고 답했습니다. 고강도의 감정노동도 수반합니다. 김현주 이화여대 의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가 진행한 ‘가사노동자의 일과 건강 실태조사’(2013년)를 보면, 우울증 유병률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약 2배 높았습니다. 역시 노동자가 아니란 이유로 ‘감정노동자 보호법’의 적용도 받지 못합니다.
■ 주 15시간 노동 의무화? ‘가사노동자법’ 쟁점은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상대로 ‘가사근로자 고용개선법’ 통과에 대한 찬반 여부를 조사해 공개했습니다. 전체 16명 가운데 9명(한정애·설훈·송옥주·신창현·이용득·전현희·문진국·김동철·이정미)이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7명(김태년·김학용·임이자·강효상·신보라·이장우·이상돈)은 답변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회에는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법안과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 이정미 의원(정의당)이 발의한 법안까지 총 3건이 계류 중입니다. 하지만 국회 논의 단계가 평탄치만은 않아 보입니다. 일단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조차 안된데다 각 법안별로 쟁점을 다툴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부 발의 법안은 다른 두 법안에 비해 가사서비스의 실질적 사용자인 ‘이용자’에 대한 의무 규정이 부실하고, 가사노동자의 안전한 노동환경을 보장하는 조항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또 ‘가사서비스 이용권’을 필요할 때 발행할 수 있는 조항 등을 포함해 가사노동자 보호보단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정미 의원과 서형수 의원의 법안은 모두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과 이용자가 함께 가사노동자의 존엄성을 보장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별·나이·신체적 조건·고용형태·신앙·국적·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면 안되고, 폭행·협박·감금·강요를 금지한 겁니다. 하지만 ‘주 15시간 노동시간 보장’ 여부를 두고 선 두 법안도 입장이 다릅니다. 이정미 의원안은 ‘주 15시간’을 의무규정으로 둔 반면, 서형수 의원안은 “노력해야 한다”고만 적었습니다.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 미만일 경우 노동관계법상 연차, 퇴직금, 사회보험 등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주당 15시간을 보장해달라”는 건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지만, 사용자 쪽의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어 차이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진 미지수입니다.
국제가사노동자의 날(6월 16일)을 앞두고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 회원들이 2013년 6월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강남스타일을 개사한 ‘우리는 프로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이들은 정부에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보호협약을 비준하고, 가사노동자를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 규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가사노동 재평가는 성평등 노동의 시작
가사노동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자리’로 여겨집니다. 통계청의 지역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 가사·육아도우미 가운데 여성의 비중은 99.3%입니다. 가사노동을 재평가하는 일이 곧 여성 노동력의 가치를 정상화하는 것, 더 나아가 성차별적인 노동구조를 개선해나가는 출발점으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월간 노동리뷰> (2015년 11월호)에서 “여성집중 직종인 가사서비스 분야 종사자에 대해서만 노동관계법 및 사회보장법의 적용을 전면 배제하는 것은 여성노동자의 권리 향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여성차별적인 법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부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한다는 이유로 저렴한 비용에 고용 가능한 제3세계 가사도우미를 데려오자는 이야기도 했었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노동자로만 계속 자리를 채워나가겠다는 것”이라며 “‘여자라면 으레 할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며 가사노동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굳건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가사노동자의 노동3권 등을 보장하는 ‘가사 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은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국회는 2012년 이 협약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는 ‘가사 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비준동의안 제출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가사노동자가 노동조건을 보호받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2018년 11월입니다. 달라진 건 없습니다.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내년엔 많은 의원들이 선거 준비에 여념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올해가 법안 심사 가능한 마지막 해”라며 기자회견을 연 이유를 밝혔습니다. 17년차 가정관리사인 김옥연씨는 이날 “17년 동안 일하며 남은 것은 아픈 몸뚱이 뿐”이라며 “이제 나이가 들어 일을 하지 못할 때를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하다”고 했습니다. 65년의 기다림은 언제쯤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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